멈춰선 시간 위를 걷다, 수인선 수영숲길의 겨울
겨울 햇살이 차갑게, 그러나 투명하게 내리쬐던 날. 발걸음은 자연스레 수인선 수영숲길로 향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짧은 여행의 끝자락, 차가운 바람을 피해 '양지쉼터'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정자에 잠시 몸을 뉘어봅니다. 푸르른 겨울 하늘 아래 단아하게 뻗은 한옥의 처마 선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바쁘게만 흘러가던 일상의 호흡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요일에는 밖으로의 여행을 빠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입구를 지나면 소박하게 다듬어진 나무 안내판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수인선 수영숲길'. 문화가 머무르고, 자연이 가득하며, 소통이 오가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참 다정스럽게 느껴집니다. 반듯하게 정비된 길의 지도를 눈에 담고, 잔잔한 겨울 바람을 친구 삼아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았습니다.
이 산책로의 백미는 단연 '수인선 협궤터널'입니다. 터널 입구에 서니 마치 과거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턱에 선 듯한 기분이 듭니다. 눈이 살짝 덮인 길을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 일정한 간격으로 켜진 따뜻한 조명들이 둥근 아치를 그리며 길을 안내합니다.
터널 안은 고요하고 아늑합니다. 저 멀리 터널의 끝점인 빛을 향해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 바닥에 남은 철길의 흔적을 밟을 때면 귓가에 옛 꼬마열차의 규칙적인 마찰음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합니다.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나 짙은의 '사라지는 것들' 같은 음악을 귓가에 조용히 흘려보내며 걷는다면, 이 공간이 건네는 아스라한 정취에 한층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터널을 빠져나와 맑은 하늘 아래 서면, 길 한편에 세워진 붉은색 안내판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탈의 아픔을 싣고 달렸던 좁은 철길. 해방 후에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실어나르다 1995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협궤열차의 이야기.
지금은 누구나 편히 걷는 평화로운 산책로가 되었지만, 그 길의 밑바탕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은 때론 새로운 온기를 품은 채 우리 곁에 머뭅니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사색과 위로가 필요한 날, 수인선 수영숲길을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