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바람이 머무는 곳, 인천 백운산 들머리 산책
인천의 바다는 늘 넓고 시원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나고 싶었다.
차가운 파도 대신 흙길의 온기를 밟고 싶어 천천히 백운산 들머리로 향했다.
백운산은 낮지만 코스가 매우 다양한 인천의 명산이다.
영종동 행정복지센터, 운서초등학교, 용궁사, 하늘고등학교 들머리 등 코스가 다양하고,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산이다.
오늘의 들머리는 하늘고등하교 바로 옆 들머리 코스로 오르려 한다.
주소는
백운산 아래 작은 상가들과 주택이 모여 있는 길목에 차를 세우고, 들머리가 있는 터널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계절은 나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길가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아카시아꽃.
하얀 아카시아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초여름의 향기를 길가의 전체에 흩뿌리고 있었다.
연둣빛 잎 사이로 하얗게 매달린 꽃송이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은은한 향기를 풀어놓으며 초여름의 문을 열고 있는 듯 했다.
서울에서는 이미 지난주 5월10일경부터 꽃잎이 하나 둘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는데,
이곳 인천의 아카시아는 이제 막 가장 찬란한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늦게 도착한 봄이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힘껏 피워낸 풍경처럼.
햇살은 꽃잎 사이로 부드럽게 부서졌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따라왔고,
잠시 잊고 지냈던 오래된 초여름의 기억들이 천천히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백운산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었다.
도시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계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조용한 초대장 같았다.
터널을 지나자
도시는 마치 등을 돌린 사람처럼 조용히 멀어지고,
눈앞에는 연둣빛 계절이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들머리에는
‘치유림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 말이 참 이상하게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향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은
얼마나 자주 걸어보았을까.
맨발 산책로의 흙은 따뜻했고,
흙냄새는 오래된 기억처럼 포근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감촉 하나에도
사람은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빠르게 정상만 향하지만,
백운산은 오히려 천천히 걸으라고 말하는 산 같았다.
급하게 오르기보다
숲의 숨소리를 들으며 쉬어가라고.
길가의 벤치에는 아무도 없었고,
쉼터에는 바람만 앉아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의 그림자를 나누며
조용히 숲의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에서 가져왔던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아니 둘레길에 하나씩 내던지듯 나는 가벼이 걷고 있다.
해야 할 일들,
쌓여 있던 피로,
마음속 작은 소음들까지도
숲은 말없이 가져가 버린다.
대신 새소리와 바람,
그리고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돌려준다.
초여름의 백운산, 바람 끝에서 바다를 만나다
숲은 언제나 조용한 얼굴로 사람을 맞이한다.
백운산으로 향하던 길도 그랬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려왔고,
흙길 위에는 오래된 시간처럼 소나무 향이 포근하게 깔려 있었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를수록
도시는 조금씩 멀어지고
마음속 소음도 천천히 잦아들었다.
길가에 서 있는 이정표는
누군가의 하루를 안내하는 작은 등불 같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과 투박한 계단,
그리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초여름 바람은
마치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숲은 참 신기하다.
말이 없는데도 사람을 위로한다.
바람 한 번 스치면 잎들이 서로 부딪혀 작은 파도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굳이 무언가를 애써 잊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정상 가까이에 다다르자
푸른 하늘이 갑자기 넓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잠시 말을 잊게 만들었다.
짙은 녹음 아래로 도시가 펼쳐지고,
멀리 바다는 햇빛을 머금은 은빛 비단처럼 반짝였다.
길게 이어진 인천대교는
마치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한 줄의 시 같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웠다.
저기 앞에 보이는 대교가 신도 평화대교이다. 이젠 신도 시도 모도를 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대가 된다.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도시도
저 멀리에서는 조용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전망대 난간 근처에서
한참 동안 바람을 맞았다.
높은 곳의 바람은
사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초록과 바다,
그리고 이 계절의 냄새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백운산 정상에는 작은 쉼터와
‘백운산 255.5m’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산은 여전히 고요했다.
백운산은 높은 산은 아니다.
하지만 높이보다 깊이가 있는 산이다.
사람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곳.
백운산 봉수대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강화로 인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한다.
서남해안을 요망하면서 황당선의 왕래 유무를 관할하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한다.
아마 산이라는 곳은
사람이 많아도 외롭지 않고,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은 장소인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길,
뒤돌아본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숲은 여전히 푸르렀고
햇살은 끝까지 따뜻했다.
치유의 숲 공간에서 조금 더 마음을 쉬어가고자 한다.






























